김성근 프로필 나이 고향 아들 유퀴즈
김성근 프로필을 알아보겠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한국 야구의 전설로 통합니다. 한국프로야구 2646경기 출장, 통산 1384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올린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산증인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OB 베어스,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등 총 7개 프로구단의 감독을 역임하였고 매 번 전설을 써내려 갔습니다.
최강 야구를 하게 된 계기
“그거도 한 일주일 거절했다”
아마추어 야구는 놀다시피 하니까 해봤자 재미없지 않냐.
돌아와서 실제 시합하는 걸 TV로 보니 얘네들이 진지하게 하는구나. 표정이 다르더라. 해볼까 싶어서 수락했다
김성근은 ‘최강야구’ 전임감독 이승엽에 대해 “이승엽은 우리 집 앞 빌당을 샀다. 나는 그늘에 있고”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돈 받는 것은 프로다.
‘최강야구’에서 은퇴한 선수들에게 “돈 받는다는 것 프로라는 것이다”라는 명언에 대해 김성근은 “선수들이 시합에 져서 프로 ‘출신’인데 창피하지 않냐고 하더라. 틀렸다, 돈 받는다는 건 프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강야구’의 목표 승률 7할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들었다며 감독하게 된 사연을 말했습니다.
김성근 감독 프로필, 나이, 고향, 배우자, 아들, 학력
출생 | 1942년 12월 13일 (80세) |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 |
원적 | 경남 진양군 미천면 |
국적 | 대한민국 |
신체 | 180cm, 82kg, A형 |
종교 | 무교 |
가족 | 아버지 김찬숙, 어머니 이계수 3남 4녀 중 여섯째 |
배우자 오효순 아들 김정준, 딸 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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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교토시립 시조중학교 교토부립 가쓰라고등학교 동아대학교 (명예 학사) |
어린 시절 그의 남다른 재능 : 안되면 방법을 찾는다.
재일교포 출신인 김성근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일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재주는 없었다. 달리기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100m를 뛰면 17초가 나왔다. 걸어가는 거랑 같았다. 운동을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어 “근데 그날 육상부 감독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달리기를 잘하냐’라고 물었고, ‘내리막을 뛰어라’ 고해서’ 그날부터 내리막길을 50번씩 뛰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심지어 김성근은 당시 학비를 벌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우유 배달을 하며 달리기 연습을 했다고. “우유배달을 하면서 달리며 초를 쟀다. 힘들기보다 좋았다. 모든 부분에서 하면 되는 거지. 못한다는 의식이 가장 나쁘다. 부족함을 채워야겠다는 신념으로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영구 귀화 하면서 했던 다짐
그런가 하면 김성근은 영구 귀화 당시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했다고. 그는 “영구 귀화를 할 때 가족들이 다 반대를 했었다. 당시 한일 국교가 안 되었었다. 그래서 김포공항에 내리면서 다짐을 했다. ‘이 책임은 내가 지자’ ‘대한민국의 최고가 되자’라고 다짐했다”라고 말해 감탄을 자아냈다.
징크스 :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
저는 징크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는데 김성근 감독님의 말을 듣고, 징크스가 왜 생겨났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많은 징크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노란 속옷 이야기인데 OB 코치일 때다. 서울 올라와서 연승할 대 입었던 게 노란 속옷이다. 되게 냄새났을 거다. 4일 내내 착용했다. 양말은 오른쪽 신고 이기죠? 그럼 신는다. 지면 또 바꾼다”. 그의 징크스는 최강 야구 시합에도 이어졌다. ‘최강 야구’ 시합 패배 당시 출근하자마자 신발부터 갈아 신었고, “이 신발 당분간 안 신을 거다”라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패배했을 때 신은 신발이기 때문이다.
한국 시리즈 우승 못하는 징크스
김성근은 한국 시리즈 우승을 못 하는 징크스를 SK 와이번스 취임 첫해에 한국 시리즈 우승으로 2007년에 징크스를 깼습니다. 무려 프로팀 감독 23년 만의 첫 우승이었고, 이에 김성근은 “우와아아 하는 기분은 안 오더라. 2008년 2연패 했을 때 새벽 4시까지 마셨다. 그런데 그것도 징크스다. 그 다음부터 시즌 들어가면 그 집만 찾는다. 결례지만 주인은 맛있어서 오는 줄 안다”라고 사실을 말했습니다.
징크스에서 볼 수 있는 김성근의 책임감
“사람이 신념이 강하면 그쪽으로 몰리게 돼있다” “김성근이라고 하면 너무 승부에 집착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난 이렇게 생각한다. 감독의 목적은 이겨서 선수에게 돈을 주는 거다. 보너스도 받지, 연봉도 올라가지, 그럼 가족도 행복하지. 감독은 그걸 위해서 모든 걸 해야 하는 사람이다”라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비정은 관심이 있는 거다.
비정한 감독이라는 소리에 대해 김성근은 ““비정한 건 관심이 있다는 거다. 또 나는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아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절대 경기 중에 선수들에게 혼을 내지 않는다. 그럼 그 사람이 마이너스가 된다”라며 전했다.
암수술 속에서도 오로지 승리의 집념
암수술 3번을 했다. 수술을 하고 기저귀를 차고 연습장에 나갔다.
근데 피가 새요. 연습이 끝나고 가려는데 피가 차서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었다
생사를 걸어야 한다. 내가 편해지려면 리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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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의: “할아버지 야구 잘하세요?”라는 질문에 “조금”
12년 전 김성근과 핫초코 광고를 찍었던 아역 모델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 선수는 올해 NC 다이노스 프로 야구 선수로 데뷔한 투수 목지훈이었습니다..
CF 찍을 당시 김성근은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경질된 상태였고, 그는 광고에서 “아 야구하고 싶다”라는 어린아이의 말에 모자를 벗으며 “나도”라고 말하였습니다.
목지훈 : 프로선수가 되면 만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이뤄졌다.
내게 야구란?
“심장이랑 똑같다. 심장이란. 어디에서든 생명선이다. 야구가 있기에 하루가 좋다. 야구 때문에 책도 보고. 야구할 때는 시간이 칼처럼 흐른다. 인생에서 제일 즐거운 길이 야구장 가는 길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하고 싶나요?
“다시 보다 야구 인생을 연장하고 싶다. 100점 만점에 70점이다. 야구는 또 변하고 있고 해도 해도 야구가 하고 싶다.”100살까지 사려고 하는데 의사가 안 된다고 하더라. 의사가 같이 죽자고 하더라"며 웃었다.
지도자 경력
마산상업고등학교 감독 (1969~1970)
기업은행 투수코치 (1970~1971)
기업은행 감독 (1972~1975)
충암고등학교 감독 (1976~1979)
신일고등학교 감독 (1979~1981)
OB 베어스 투수코치 (1982~1983)
OB 베어스 감독 (1984~1988)
태평양 돌핀스 감독 (1989~1990)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91~1992)
해태 타이거즈 2군 감독 (1994~1995)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1996~1999)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00)
LG 트윈스 2군 감독 (2001)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1)
LG 트윈스 감독대행 (2001)
LG 트윈스 감독 (2002)
치바 롯데 마린즈 1·2군 순회코치 (2006)
SK 와이번스 감독 (2007~2011)
고양 원더스 감독 (2012~2014)
한화 이글스 감독 (2015~2017)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부 특별 어드바이저 (20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카운슬러 (20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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